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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아키바하라의 추억
아키바의 여왕, 모모이 하루코가 기억하는 90년대 아키하바라의 모습
[슈타인즈 게이트 제로(シュタインズ・ゲート ゼロ)] 콜라보 시계 발매 기념!
아키하바라의 역사를 [모모이 하루코(桃井はるこ, 1977~)] 씨가 말한다!! 모모이가 본 90년대의 아키바(アキバ)
[2018년 12월 13일, 애니메이트 타임스 기사 번역]
▼모모이 하루코는 성우, 싱어송라이터, 작곡가로 90년대 말 ~ 2000년대 초중반까지 아키바계 [전파송(電波ソング: 일반적으로 중독성이 엄청난 노래를 뜻함)]을 주축으로 이름을 날렸고 이른바 [아키바의 여왕(アキバの女王)]이라고 까지 불렸을 정도로 유명했다.
▼참고로 모모이 하루코는 슈타인스 게이트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페이리스 냥냥(フェイリス・ニャンニャン)]의 성우다.
- [오오사와 상회(大沢商会)/J.O 크리에이티브(J.O クリエイティブ)]로 부터, 애니메이션 슈타인즈 게이트 제로와 콜라보 한 상품 [STEINS:GATE 0 공인 손목시계]가 현재 발매중이다(11월 22일 발매 개시, 2020년 현재도 판매 중).
손목시계는 [오카베 린타로(岡部倫太郎)]와 [마키세 크리스(牧瀬紅莉栖)]를 이미지 한 흑과 백 2종류다. 시계에는 작품의 분위기를 표현한 기하학 무늬가 그려져 있어, 애니메이션 콜라보 상품으로는 수려한 디자인이다.
애니메이션 로고는 시계 뒷면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에서도 평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좋다. 둘 다 한정 200개의 상품으로 각각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다.
또 다른 시계는 2019년 1월경에 등장하는 회중시계를 형상화한 [STEINS:GATE 0 회중시계]도 출시된다. 문자판은 심플하여 보기 쉽고, 본체는 손에 쥐었을 때 친숙한 사이즈로 일상 사용을 고려해 설계된 회중시계이므로 고급스러운 질감과 시인성을 고집해 개발된 상품이다.
이 쪽도 한정 200개로 판매하는데, 여기에는 작품 전체의 상징적 아이템이라고 하는 것으로 일련 번호는 들어가 있지 않고 로고 만의 심플한 외관으로 완성되었다.
이번은 3개의 상품의 발매를 기념, 애니메이션 슈타인즈 게이트 시리즈로 페이리스 냥냥을 연기하는 성우 모모이 하루코 씨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시계의 기획과 겸해, 젊은 시절 모모이 하루코 씨가 아키하바라의 거리에 매료된 계기나 그 시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말해 주셨다.
슈타인즈 게이트에 등장한 아키하바라와 모모이 하루코 씨가 지내 온 아키하바라 거리와 의외의 관련성은!? 작품의 팬은 물론, 아키바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가 읽어 주었으면 하는 인터뷰입니다!
(시계 얘기는 빼고 아키하바라 관련 얘기만 번역 하겠습니다)
원조 아키하바라의 여왕 모모이가 아키바에게 매료된 계기는?
Q: 이번에는 시계 기획으로 아키하바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싶은데요. 자, 그럼 모모이 하루코 씨에게 있어서 아키하바라는 어떤 거리일까요?
모모이: 어...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네요(웃음).
Q: 저도 그렇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럼, 처음 아키하바라에 갔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모모이: 제가 아키하바라에서 놀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예요. 그 무렵 아키하바라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는 가전을 팔고 있는 거리 정도였어요. 굳이 놀러 가는 도시론 인식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Q: 어쩌다 아키하바라에 가게 되었는지?
모모이: 가전제품이라든가, CD라든가, 제가 좋아하는 물건이 모두 모였으니까요. 아키바에 가면 워크맨 새 기종이 다 나오더라고요. 게다가 헤드폰 매장도 잘 갖춰져 있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처음 봤을 때는 충격이었어요, CD 가게도 마찬가지로 메이저 레이블에서 나오는 CD는 모두 입하되어 있었죠. 정말 [여기는 천국이다!]라고 생각했어요.
Q: 초등학생이 아키하바라에 다녔다니 쩐다!
모모이: 당시 [주오선(中央線)] 인근에 살고 있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전철로 통학했어요. 하지만 학교와 아키하바라는 반대 방향이었죠, 그래서 하교할 때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을 지나서 아키하바라에 다녔어요.
Q: 아키하바라에 자주 다니는 계기는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모모이: 계기 중 하나는, 당시 [아스키(アスキー)]가 냈던 잡지 [패미컴 통신(ファミコン通信, 현 패미통)]였어요. 지금은 주간 게임지입니다만, 당시에는 격주 잡지였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저는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2주에 한 번 있는 금요일이 기다려졌습니다만, 어느 날 아키하바라에 갔더니 수요일인데도 새로운 패미컴 통신을 팔더군요. [어? 이거 아직 내가 안 가진 잡지인데?!] 이렇게요.
Q: 금요일 발매인데 수요일에 팔았어요?
모모이: 당시는 아직 시대가 시대였기 때문에, 월요일 발매인 [주간 소년 점프(週刊少年ジャンプ)]가 일요일에 팔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근처의 술집 같은 데서 말이죠(웃음).
그것과 마찬가지로 아키바에서 수요일에 패미컴 통신을 파는 가게를 발견해 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이걸 사서 읽으면 누구보다 빨리 최신 게임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에 2주에 한 번은 꼭 아키하바라에 가게 되었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때였다고 생각해요.
(1990년 아키하바라 모습)
Q: 아키바에 다니는 계기가 패미통이었다니! 당시 모모이 씨 같은 아이들은 많았나요?
모모이: 아키하바라에 중학생 여자라니, 저 이외는 없었죠(웃음). 그래서 점원이 금방 절 알아봤어요. 서로 얼굴 튼 이후에는 점원이 제가 살 것 같은 게임을 미리 킵 하게 되었어요.
Q: 예약도 안 했는데?
모모이: 물론 예약은 하지 않았고, 잡아두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어요. 진열장에는 매진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제가 가게에 가면 [제대로 두고 있었어~]라고 말해줬어요.
Q: 에이, 얄밉다! ㅋㅋ
모모이: 옛날 아키하바라는 그런 거리였죠. 모두가 평등하지 않고, 얄팍한 거리였죠(웃음). 분명히 저 말고도 단골손님의 취향에 따라서 그 사람이 살 만한 건 굳이 묻지 않아도 지키고 있었겠죠?
나머지는 젊은 세대를 소중히 대해주려고(웃음) 후원해 준 것은 아닐까요? 그런 것이 계기가 되어, 저는 아키바의 게임점에 다니게 되었죠. 그때부터는 일본 게임뿐만 아니라 해외 게임에도 빠지게 되었어요.
Q: 아주 찐 여중생이었네요. 어떤 해외 게임이었죠?
모모이: 슈퍼 패미컴 북미판 [SNES(Super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였어요. 일본의 슈퍼 패미컴은 회색빛으로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데, SNES는 보라색이고 쿨한 이미지가 멋있었죠. 크리스마스에 SNES의 본체를 부모님이 사 주셨고, 그 후 해외 게임으로 세계가 넓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Q: 해외 게임 타이틀 중 인상에 남는 게 있나요?
모모이: 많이 있었어요. 재밌었던 건 [GENESIS(제네시스, 해외판 메가드라이브)] 타이틀이었는데, [마리오 하키(マリオホッケー)]라는 게 있더라고요?
직원이 쓴 POP을 보고 저는 [세가인데 마리오?(마리오는 닌텐도에서 개발했다)] 라고 이상하게 생각했더니 그 마리오가 아니라 [마리오] 라는 선수를 표현한 하키 게임이었어요.
Q: 세가에 마리오 게임이 있을 리 없죠(웃음).
모모이: 지금처럼 메이커의 울타리를 넘어 캐릭터가 콜라보하는 시대는 아니었죠. 그런 이상한 게임을 많이 알면서 [세계에는 여러 가지 게임이 있어서 재미있구나]라고 생각했죠, 해외 게임 잡지도 재미있더라고요.
Q: 패미통뿐 아니라 해외 잡지도 읽었나요?
모모이: 제가 자주 사던 잡지는 [Nintendo Power]라는 잡지였어요. 매호 굉장히 희한한 서양식 포스터가 붙어있어서 방에 잔뜩 붙였죠. 여러분이 아시는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II(ストリートファイターII)]입니다만, 해외판 패키지는 블랑카가 둥! 하고 그려져 있고, 류가 넘어져 있었어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지요?(류가 주인공이니까 다른 조연 캐릭인 블랑카한테 당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뜻) 그런 문화 차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키하바라라는 거리였습니다.
90년대, 아키하바라에 미래 가젯 연구소(未来ガジェット研究所)와 같은 곳이 실재하였다.
Q: 그 뒤에도 아키하바라에 자주 다녔죠?
모모이: 그렇죠, 확실히 슈타인즈 게이트의 [라보멘(ラボメン: 주인공 오카베 린타로가 주최하는 서클 미래 가젯 연구소 멤버의 총칭)]과 같이 아키하바라 가게에 틀어박혀 있었죠.
저에게 있어 미래 가젯 연구소는 그런 가게였어요. 돈이 없는 중학생이라 쇼핑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가게엔 계속 있었죠. 점원과 이야기를 하거나 그것도 질리면 전시된 게임을 갖고 놀았어요.
Q: 계속 가게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모모이: 오히려 [계속 놀아도 좋아]라고 좋아했어요. 가게 안에 손님이 없으면 아무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점원은 싫어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호의를 받아들여, 다른 손님이 올 때까지는 [아타리(ATARI)] 게임 같은 것도 갖고 놀곤 했죠.
Q: 그 가게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모모이: [멧세 산오(メッセサンオー)]의 해외 게임 코너였어요. 그 매장은 평일에도 게임 회사 사람들이 놀러 왔었어요. 저는 항상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단골손님으로 안면이 트였죠.
그 가게는 재미있었어요, 저는 여중생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이 녀석 초짜구만] 이라고 여겨졌겠지만, 조금만 이야기하면 제가 [치킨(겁쟁이라는 뜻의 영미권 속어인데, 여기서는 주로 초보의 의미)]인지 어떤지는 알 수 있잖아요?
Q: 게임을 좋아한다면 금세 알 수 있죠?
모모이: 그래서 잠깐만 이야기하면서 [요녀석 좀 아네?] 같은 분위기가 되면, 이름도 모르는 상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였어요. 물론, 처음에는 점원이 중심이 되어 3명이 이야기를 하다가 점원이 바빠져서 어디 가버린 후에도 그 손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1991년 아키하바라의 밤거리)
Q: 친해졌나요?
모모이: 휴대전화가 있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휴대전화가 지금처럼 널리 쓰인 건 30년도 채 안 된다), 연락처는 알려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가게에서 만나면 얘기를 나누었던.. 게임방은 그런 곳이었어요. 분명 다른 단골손님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거에요.
Q: 가게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시나요?
모모이: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단골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런 게임을 이식해볼까] 라던가, [00 씨가 00에서 고소당했어] 라던가,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게임 업계의 뒷이야기였어요. 그걸 들으면서 저는 [어른의 세계는 대단해! 이건 패미통에도 실리지 않았어!] 라고.
Q: 안 실렸어야죠(웃음).
모모이: 저는 학생이었으니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거웠어요. 그들도 회사의 얘기나 만들고 있는 게임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죠. 지금처럼 SNS가 없으므로, 이야기가 새어 퍼질 염려가 없었으니까요.
Q: 게임업계에서 일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신선하셨겠네요!
모모이: 네, 엄청! 그때까지 우리는 장난감 가게에 가면 마음대로 게임이 샘솟아서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아키하바라에 다니게 되고 나서는 [이런 어른들이 밤새서 만들고 있구나] 라고 알았어요.
[며칠 못 잤어] 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게) 그들의 자랑이에요, 철야가 자랑스러운 수수께끼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죠.
90년대 아키하바라 CD샵 이모저모
Q: 학창시절, 모모이 씨는 게임 이외에 취미가 있었나요?
모모이: 여성 아이돌도 취미 중 하나였어요. 지금의 여성 아이돌은 단체가 주류입니다만, 당시에는 1인조나 3인조가 많았죠. 당시는 [아이돌 겨울의 시대(アイドル冬の時代, 80년대 중후반~90년대, 아이돌이 영 흥행하지 않던 시절)]라고 불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돌 붐이 아니었어요.
Q: 붐이 아닌데도 모모이 씨가 여자 아이돌에게 끌린 이유는?
모모이: 프로가 만든 노래를, 10대 여자아이가 부르고 있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프로가 마치 오트쿠튀르처럼 곡을 만들고 그걸 소녀들이 부르는 거예요. 다른 음악들, 예를 들어 밴드나 팝송도 들어봤으나 특히 여자 아이돌을 좋아했어요.
Q: 또 들었던 음악은?
모모이: [TM 네트워크(TMネットワーク)]나 [타마(たま)]나 [스챠다라파(スチャダラパー)] 라이브에도 갔었어요. 그런건 다른 친구에게 대신 권유할 수 있었지만, 여성 아이돌 이벤트는 [좋아] 라고 했죠(웃음).
또, 애니송이나 [특촬물(特撮物, 특수촬영물의 줄임말로 대표적인 작품으로 가면라이더나 슈퍼전대 시리즈가 있다)]도 좋아했어요. 음악은 전반적으로 좋아하죠.
Q: 여자 아이돌의 CD를 사는 곳도 아키하바라였나요?
모모이: 물론이죠, 밴드나 팝 CD라면 신주쿠나 이케부쿠로에서도 살 수 있었죠. 하지만 아이돌 CD를 대량으로 팔고 있는 가게는 아키하바라뿐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시마루 전기(石丸電気)]와 [야마기와 소프트(ヤマギワソフト)]에 가면 아이돌뿐만 아니라 애니송도, 특촬도 쭉 늘어서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아키하바라의 상점이라면 여러 이벤트도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맞아! 이시마루 전기의 서비스가 굉장했어요.
Q: 어떤 서비스인가요?
모모이: CD를 사면 반드시 주는 할인권 환원율이 이득이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훌륭했어요, 어느 날 찾고 있는 CD를 점원에게 물었더니 [여기에는 없지만 00호점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달려서 가지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라며, 점원이 가지고 와 주었어요.
가르쳐 주면 제가 사러 가면 될 텐데, 일부러 달려서 가져와 주는 거였어요. 가게 안에서 그런 광경을 자주 보았는데요, 누구에게나 그렇게 해 주었어요.
Q: 마치 VIP 같은 대우군요!
(2002년 아키하바라의 모습)
모모이: 90년대 초반은 CD가 팔리던 시대였기 때문에, 계산의 행렬이 길어서 30분 정도 기다려야 했거든요.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점원이 뛰어서 가져다주는 거였죠. 그게 보통이었어요.
Q: 아키하바라 CD샵에서의 추억은 있으세요?
모모이: 제가 데뷔한 2000년의 이야기입니다만, 이시마루 전기와 야마기와가 이벤트를 했어요. 당일, 제가 가수로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점원에게 인사를 했더니 [어? 항상 미즈노 아오이(水野あおい, 1975년생으로, 90년대 여성 아이돌) 이벤트에 왔던 아이지?] 라며 놀라더군요. 당시 아이돌 이벤트에 오는 여성 고객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죠.
Q: 그렇게 자주 다녔나요?
모모이: 그렇죠, 게다가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스태프들에게 [여기서 CD를 사지 않았다면, 지금의 싱어송라이터인 저는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점원분들이 [기쁘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90년대 아키하바라는 이런 세계였다
Q: 모모이 씨가 아키하바라에 자주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아키하바라는 어떤 거리였습니까?
모모이: 그렇네요, [야마노테선(山手線)]과 [소부선(総武線)]이 교차하는 터미널 역이기도 해, 비즈니스맨이 많이 모이는 도시였어요. 역 앞에 있던 [아키하바라 백화점(アキハバラデパート)]은 [신바시역(新橋駅)] 앞에 있는 [뉴 신바시 빌딩(ニュー新橋ビル)]을 작게 한 것 같은 이미지였죠.
Q: 신바시는 비즈니스맨의 거리네요.
모모이: 마사지 가게는 없었습니다만, 서점, 100엔 삽, 수수께끼의 수입품 판매점, 비지니스맨의 Y셔츠와 양말 등을 팔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키하바라 백화점에는 아키하바라에서도 희귀한 음식점도 있어서 근처 가게에 자주 갔었어요.
Q: 모모이 씨가 아키하바라에 갔을 때, 순회 경로는 정해져 있었나요?
모모이: 그 때에 따라 제각각이었어요. 하지만 전자 상가 개찰구는 매우 혼잡하므로 백화점 출구로 나오는 건 정해져 있었죠. 백화점 입구를 나오면 항상 시연 판매로 식칼을 팔고 있었어요. [전선도 끊어져~] 라든지 말하고(웃음).
보통 사람은 칼로 전선을 끊지 않죠? 끊지 않으면 안 되는 딱딱한 것은 생선의 뼈라든지요. 그건 아마 그 근처에 팔고 있는 전선을 사 왔기 때문에 무리하게 전선을 끊었던 거겠지요. 그 후 해당 판매원이 유명해져서 홈쇼핑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봤는데, TV 안에서도 여전히 전선을 끊었어요.
Q: 지금 아키하바라역 앞에서 시연 판매는 꿈도 못 꾸죠.
모모이: 지금은 [아트레 아키하바라(アトレ秋葉原)]가 있는 곳에서 했었어요. 그 옆에 계속 심벌즈 치고 있던 토끼와 원숭이가 있었어요, 징징징징징 거리면서요(웃음).
Q: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모모이: 항상 혼자 갔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어요. 누군가와 가면 그 사람과의 대화에 빠지거나, 길 안내를 맡기게 되잖아요. 하지만 저는 혼자여서 기억하고 있죠.
그리고 자주 가던 가게는 CD 가게나 중고상점이 많았어요. 그리고 배고플 때는 [찻집 동양(喫茶東洋)]으로 가곤 했죠. 그 음식점은 카레가 저렴했지만, 별로 맛있지 않았어요!
일동: (웃음).
모모이: [더 컴(ザコン)]이 생긴 뒤에는 지하에 있던 찻집 [카페테리아우드(カフェテリア ウッド)]도 자주 갔어요. 거기서는 산지 얼마 안 된 게임에 대한 설명서를 읽는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가게를 둘러보면 집까지 참을 수 없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서, 모두 멜론 소다 같은 것을 마시면서 작은 설명서를 열심히 읽고 있었죠.
Q: 바로 전철을 타고 돌아가면 갖고 놀 수 있을 텐데요?
모모이: 다들 참을성도 없었죠. 그 가게는 냉방이 강해서 매우 추워서, 항상 꽁꽁 싸늘하게 식었어요. 왠지 모르겠으나 [찻집은 추우면 추울수록 훌륭했다]라는 시대였어요.
Q: 오지네요(웃음).
모모이: 그런 풍조였지요, 어쨌든 아키하바라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 전부 있는 거리였어요. 지금 같은 인터넷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아키하바라에 갈 수밖에 없었어요.
갔는데 아무 일 없었다? 그건 그거면 되는 거예요.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라는 정보를 알게 된 것이니까요. 오늘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도 [내일은 무엇인가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게 해 주는 거리, 그곳이 아키하바라입니다.
(얘기가 길어져 다음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90년대 아키하바라 얘기, 흥미진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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